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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함시생각

하함시 생각 - ‘에고 에이미’의 신앙

‘에고 에이미’의 신앙

 

                                                                                                           

글 | 김충연 교수(감리교 신학대학교 신약학)

 

 

   헬라어에서 ‘에고 에이미’는 영어로는 ‘I am’을 뜻하며 ‘나는 ~이다’ 또는 ‘나는 존재한다’라는 의미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고 에이미’라는 표현은 아주 일상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성서에서 예수님과 관련해서는 매우 특별하게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 표현은 특히 요한복음에서 자주 접하는 표현으로 모두 7차례 등장 하는데, 모두 예수님의 표상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빵이다’(요 10:7; 14:6; 6:48)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요한복음의 에고 에이미 표현은 일부 학자들의 경우 전승사적으로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에게 소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이름이 무엇이냐고 간접적으로 묻습니다(출 3:13). 그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1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표현이 70인 역 번역본에는 (에고 에이미 호온)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질문에 왜 특정한 이름을 말씀하시지 않고 ‘나는 곧 나야’라고 말씀하신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어떤 특정한 이름으로 지칭하는 순간, 하나님은 그 이름에 갇히게 되고, 개념화(槪念化)가 되어 버릴 것을 거부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요한복음 저자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런 하나님의 서술 표현을 차용해서 예수님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설명하기 위해 ‘에고 에이미’ 화법을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공관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에고 에이미’를 사용하시는 것이 발견됩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마가복음 14:60절 이하에 등장하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당하시는 장면입니다. 대제사장은 무리에 의해 잡혀 오신 예수님을 향해 “그대는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61절)?”라고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에고 에이미’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를 문법적으로 번역하면, ‘나는 있다’ 또는 ‘나는 이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만약 질문자의 대답에 긍정의 말을 표현하려면, ‘예’ 혹은 ‘그렇다’에 해당하는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에고 에이미’라고 답하실 뿐입니다. 우리나라 성경 번역본들은 대부분 이것을 ‘내가 그니라’(개역개정), ‘내가 바로 그이요’(새번역), 또는 ‘그렇다’(공동번역개정)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한글 번역본 성경과는 달리 그렇게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내가 누구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빌라도 총독이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요?’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막 15:2; 마 27:11; 눅 23:5)라고 답하시는데, 이를 번역하면, ‘당신이 말하였소’ 정도가 될 것 입니다. 이것을 우리나라 성경 번역은 조금씩 다르게 번역하고 있는데, 개역개정은 ‘네 말이 옳도다’로, 새번역은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로 그리고 공동번역은 ‘그것은 네 말이다’라고 옮기고 있습니다. 개역개정의 번역은 기독론적인 요소가 강하게 가미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면, 새 번역과 공동번역 성경은 문법적인 번역이며 원문에 더 가까운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새번역)’나 ‘그것은 네 말이다’(공동번역)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당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거나 표현을 자제하는 것은 아직 그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그들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메시아의 개념과 예수님 스스로가 생각하시는 자신의 정체성과 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에 대하여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고 나중에 높은 자리를 달라고 한 제자들도 있었습니다(막 10:37).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가 헛된 것임을 알게 해주시고, 그의 길이 고난의 길임을 암시하십니다(막 10:38).

 

 

   이처럼 지상의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는 기대로부터 소외되었으며, 심지어 가장 가까운 제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소외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까지 철저하게 혼자이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 애쓰셨습니다(눅 22:39).

 

   ‘에고 에이미’의 신앙이란, ‘나는 그냥 나’의 신앙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대와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신앙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 의해 규정되거나 정의 내려지는 어떤 신앙도 아닌, 그냥 유일 무이한 존재로서 나만의 신앙입니다. ‘나’로서의 신앙 곧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 오직 그 한 가지만을 목표로 삶고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정의 내려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과 사명을 깨닫고 그 길을 올곧게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