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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함시

8월8일(목) 위로의 아들, 바나바 1

누군가를 추천할 용기

 

사도행전 9:26~27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이 교회와 연락을 취하려 할 때, 바나바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울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사울은 기독교 신자들을 핍박하고 처형시킨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사울은 자신도 예수님을 만난 경험을 하였습니다. 문제는 거의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바나바는 행동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과거의 두려움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맞아들여, 사도들에게로 데려가서”(27절a). 그는 사울에게 단지 위로의 말을 해줄 수도 있었습니다: “기다려 봐요. 그들에게 시간을 주세요. 그들은 결국 당신이 정직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예요!” 이렇게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그에겐 더 편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효과적으로 격려하고, 그를 위해서 심지어 자신의 좋은 평판을 위험에 빠뜨릴 각오를 했습니다.

   우리가 소위 ‘아웃사이더’의 편에 서면 인기를 잃을 수도 있고, 친구들로부터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기독교적인 사회’에서 좋아하지 않는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과 공동체를 형성한다면 우리는 거절당할 위험도 있을 것입니다.

   루르 지방에 있는 한 목사님을 방문한 손님들은 거실 소파 바로 위에 있는 벽에 축구공 크기의 기름 자국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왜 목사님은 벽을 다시 칠하지 않는 거지?”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 다. 왜냐하면 며칠 후면 새로운 자국이 생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님의 집은 노숙자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였습니다. 목사님은 방문하는 모든 사람을 소파에 초대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친 머리를 벽에 기대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벽엔 위로와 도움을 받은 많은 사람에 의해 ‘추억의 기름 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9:9-13에서 예수님이 이 세상의 소외된 자들을 돌보고 위로와 치유, 새로운 기회를 선물한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마 9:12).

 

적용과 기도 오해받고 있는 친구나 동료의 편에 서서 그를 추천하고 소개할 줄 아는 용기가 있는지 되돌아봅니다. 개인의 인기보다는 공동체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