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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함시

10월 24일(목)세계와 인류의 초기 역사에서 5-형제가 다툴 때(창세기 4:1~24)

죄인도 사랑하는 하나님

 
창세기 4:15~16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히브리서 13: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하나님은 경건하지 않은 사람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겔 18:23).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기회를 주시며, “형제에게 저지른 살인은 하나님이 가장 큰 슬픔을 가지고 벌을 내릴 것이라고 형제를 살인한 가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번역자가 '일곱 배'로 번역하는 숫자는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즉, 이것은 일곱 개의 일과 일곱 개의 십, 즉 70을 나타내기도 합니다”(H. 브로이머).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숫자 7은 하나님의 완전함과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죽어 마땅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보장하는 보호를 약속합니다. 가인의 생명이 공격받을 때, 하나님은 가인의 생명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죄와 타협하는 것을 찬성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분은 죄를 향해서는 분명하게 ‘아니오’(롬 5:12)라고 말씀하시지만, 죄인을 향해서는 분명하게 ‘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을 향해서도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온전한 그리스도만큼 소중합니다”(고후 5:19.21). 가인은 여전히 그것을 몰랐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가 죽어 마땅함에도 그를 보호하려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인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 그가 이런 하나님의 도움을 저버리고 “주님 앞을 떠났다”(16절)라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가인은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살았습니다.” 놋은 한 나라의 지리적 표시가 아니라, ‘방황하다’라는 뜻으로 “낙원 문밖의 삶”, 즉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인을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형제 살인자에게 표징으로 보호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설명할 수 없는 가인의 표징은 신약 성경에서는 구속의 표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대체 됩니다. 이 십자가 아래에서는 더 이상 불안하고 덧없는 삶, 즉 ‘밖에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삶은 없습니다. 아벨의 피는 복수를 외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용서를 말하기 때문입니다”(H. 브로이머).
 
적용과 기도  죄는 미워하나 죄인은 용서하시는 하나님, 주님을 따라 우리도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며 주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