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하는 자는 기쁨을 전하는 자입니다
사도행전 11:23 //누가복음 15:5~7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영적 성장을 기뻐하셨습니다(눅 10:21; 비교. 마 16:15-17; 요 15:8.11.16). 바나바도 안디옥에 있는 많은 그리스인이 교회로 몰려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이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을 멀리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로 지나치면 안 됩니다 (비교. 행 15:3). 하늘에서도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눅 15:7a) 기뻐한다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혼을 구원하실 때 우리 마음도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때 시기, 회의 또는 불신으로 인해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유명 인사가 자신들이 깊은 죄책감에서부터 어떻게 예수님께 가는 길을 발견했는지 간증할 때 경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대개는 너무 늦게 나오는 새 신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니면 크리스천 싱글맘이 늘 짜증을 내며 자녀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가 특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즉 그들의 행실이 우리에게 이질적이거나 여전히 하나님과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백할 때, 우리는 진심으로 기뻐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사람들과도 기쁨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눅 15:6.9.32). 또한 “이 고백이 진짜인지 누가 알겠어! 하지만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해!”라고 의심하며 오만하게 반응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함께 기뻐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비교. 눅 22:32a; 빌 1:9-11). “나는 이 땅에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과 생각에 새기고,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사랑으로 전하기를 원합니다”(작자 미상).
적용과 기도 오늘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나에게 낯선 이들과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들에게도 내가 받은 사랑을 기꺼이 나누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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