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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함시

9월4일(수) 주님의 명령을 받은 열두 사람 2

연로한 교회 지도자 요한

 

요한이서 1:4~6  

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요한계시록 22:8~9//21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계시를 경험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닥친 매우 혹독한 유배도 견뎌내야 했습니다. 요한은 이에 관해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 외의 자료들에 의하면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사망 이후에야 자유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승에 따르면 그는 에베소로 돌아와서 바울이 설립한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아마도 그때쯤 그는 이미 아흔 살에 접어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열두 제자 중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 오래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복음서(요한복음)를 저술했습니다. 아마도 요한은 순교자로 죽지 않은 유일한 사도일 것입니다. “히에로니무스는 그의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요한은 노년에 너무 노쇠하여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교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요한의 입술에는 항상 ‘내 자녀들, 서로 사랑하라’라는 표현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왜 항상 이것을 말하는지 물었을 때, 그는 ‘이것은 주의 명령이며, 그것만 따르면 충분하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J. 맥아더).

    실제로 예수님은 믿는 자들 사이의 사랑을 새로운 계명이자 기독교인의 특징으로 다섯 번이나 강조합니다(요 13:34-35; 15:12.17). 요한은 이 주제를 자신의 편지에서 다루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요일 4:11.7; 요이 1:5)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간단하게 들리지만, 실천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빠르게 한계에 다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그리스어 ‘아가페’)을 언급합니다. 이 사랑은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롬 5:5). 그러므로 우리는 깨진 관계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가페 탱크”는 넘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탱크에 가득한 하나님의 사랑은 기도라는 “수도꼭지”로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서로 사랑 할 수 있습니다(요일 4:19).

 

적용과 기도  사랑의 하나님, 깨어진 관계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날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으로 이웃을 바라보며 사랑하게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