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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함시

9월29일(금) 마태복음에서 길어 올린 생명의 말씀-13

교활한 세금 논쟁

마태복음 22:15~22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레위기 27: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세금은 수천 년 동안 부과되었습니다. 그 세금은 종종 통치자의 호화로운 생활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황제에게 소위 인두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태어났을 때, 그 유명한 인구 조사가 있었습니다(눅 2:1-3).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쳤던 하나님의 백성이 로마에 있는 이 이방인에 게 실제로 세금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분쟁은 이스라엘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 습니다. 이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세금 납부에 대한 논쟁이지만 바리새인들의 숨은 의도는 결국 예수님께서 사역하지 못하도록 그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만들어낸 올무로 예수님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아부하듯이 말하려고 했던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진정성과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생각을 확인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판단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음을 기록했습니다(마 23:1-7.13). 예수님은 그들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어색한 침묵이 흐릅니다.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라.” 그들은 예수님께서 동전에 황제의 초상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고 말씀하는 것에 당혹해했습니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 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세금은 가이사에게. 그리고 하나님께는 자신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음을 고백하십시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 앞에 계시고, 그가 그들을 죄에서 속량하기를 원하시며, 이미 몇 달 동안 사랑과 인내와 많은 기적으로 그들에게 은혜 베푼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인정하십시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탄복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남겨 두고 떠나갔다.” 이런 행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바리새인들의 갈등은 양심에서 비롯 된 갈등이 아닌 그들의 교활함으로 인한 갈등이었습니다. 사도들이 그 후에 이스라엘의 권력자들과 가졌던 갈등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때 사도들은 아주 분명하게 그들의 생각을 표현했습니다(읽기. 행 5:29)

 

적용과 기도 주님, 세상 속에서 살면서 갈등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분별하게 하시고, 주님의 것을 따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