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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함시

9월24일(주일) 마태복음에서 길어 올린 생명의 말씀-8

때때로 찬양하라

마태복음 11:20~27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2:23~25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1)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 도시를 향해 말씀하신 매우 심각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선한 일들이 하늘 아버지와의 진정한 연결에 대한 갈망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예수님께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 수님의 말씀과 기적에 대해서는 감격했지만, 예수님의 초대는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절망하고 낙담해서 돌이키시고, 기도 중에 실망을 털어놓았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왕이 다스리는 백성의 수가 셀 수 없이 많다 하여도, 그가 물러나면 어느 누구도 그의 업적을 찬양하지 않으니, 왕으로서 통치하는 것도 헛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전 4:16; 5:15).”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절망에서 나온 애가가 아니라, 찬양의 노래를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지혜를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길은 거절과 멸시와 다툼에서 시작되었고, 그 길은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그 수치의 절정을 맞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말 그대로 예수님을 못 박고, 그의 행동을 비웃으며 상기시킬 것입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가 보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마 27:42).”

 

   그들의 마음과 정신은 그들이 가진 선입견과 소위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생각 때문에 편협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성한 것들을 붙잡을 수 있는 안테나가 없는데도, 미숙한 자, 약한 자, 어린아이와 같이 보잘것없는 자들이 영리하고 지혜로운 자보다 종종 더 하나님을 잘 이해한다고 칭찬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향해 주시는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b).”

 

적용과 기도 주님, 약하고 보잘것없는 들어 사용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온 맘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