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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함시

9월10일(화) 성경 속 도시 여행 2

바벨론의 강가에서

 

시편 137:1~4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시편 저자가 이 글을 작성할 때는 그가 다시 고향에 있을 때입니다. 그는 내면의 눈으로 “바벨론의 강변”을 바라보며,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 하류 지역을 가로지르는 많은 인공운하를 생각합니다. 그는 이렇게 작물이 풍요롭게 자라는 지역에서 자기 동포들과 함께 유배자로서 생활하고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의 회상은 저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 성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겪을 수밖에 없었던 많은 고통과 아픔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하나님께 더 큰 고통을 주었음을 이 시편 저자가 자각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원망스럽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나의 백성이 우리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되었으니, 다시는 주께로 돌아가지 않겠다 하고 말하느냐? 처녀가 어찌 자기의 보석을 잊으며, 신부가 어찌 결혼식에 입을 예복을 잊을 수 있느냐”(렘 2:31b32; 비교. 렘 2:13).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드리는 제사보다 그들의 사랑을 더 간절히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했습니다(렘 6:19-23).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회개하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그것은 헛된 기다림이었습니다. 남유다 백성의 바벨론 유배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의 백성을 다시 그의 고향으로 인도할 것이었습니다.

   “이제 낯선 곳, 황량한 땅으로 잡혀간 사람들은 시온이 하나님의 현존의 장소(시편 48편; 84편; 87편) 로 얼마나 의미가 있는 장소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H. 람파르터). 때때로 우리 인간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공동체로 이끌기 위해 기꺼이 다른 방법을 사용합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베푸셔서 그대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과 너그러우심과 오래 참으심을 업신여기는 것입니까”(롬 2:4). 나는 이 선하심에 대답하고, 만약 하나님과 나 사이에 무엇이든 미묘하게 얽힌 것이 있다면 해소하고자 합니다.

 

적용과 기도 사랑의 주님, 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낯선 환경으로 인해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어떤 상황에도 평안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