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 - 위로의 아들
사도행전 4:36~37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레위족이며, 구브로 출신인 요셉 역시 예루살렘에서 그의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그가 만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위로”입니다(비교. 눅 2:25). 사도들은 요셉에게 바나바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는데 이 말은 “위로의 아들”을 의미합니다. 사도들이 바나바에게 이런 별명을 지어준 것은 바나바가 단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능력이 있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나바가 이런 사역을 감당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신이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히스기야는 “이 아픔이 평안으로 바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몸을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시고, 주님께서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 다”(사 38:16b-17; 비교 시 119:50.76)라고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커다란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경험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겪고 있습니다. 인생과 죽음을 견디게 하는 진정한 위로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매우 중요합니다.
초창기 복음주의 개혁교회의 입교자들은 몇 가지 교리문답들을 외워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많은 청소년에게는 통과하기 쉽지 않은 난관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도전적인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과 오늘날까지도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읽을 때 놀라움과 감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에서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내가 영혼과 육체로서 삶과 죽음에서 나는 내 자신이 아니라 나의 충성스러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귀한 피로 내 모든 죄를 완전하게 대신하여 주셨으며, 나를 악마의 모든 권력으로부터 구속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 없이는 나의 머리에서 한 올의 머리카락도 떨어질 수 없도록 지키시며, 모든 것이 나의 구원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또한 그분의 성령으로 나를 영생의 확신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그분을 섬기기를 원하고 준비하게 하십니다”(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중에서).
적용과 기도 지금도 여전히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끄시고 이루시는 주님, 나와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역사하사 이 땅에 속히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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