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창세기 3:17~19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여자에게는 두 가지 벌을 그리고 남자에게는 네 가지 벌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 네 가지가 모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남자의 삶에서도 고난과 기쁨의 대비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형벌의 말씀은 남자의 일과가 많은 고난으로 정해져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매일 가시와 엉겅퀴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어려움과 힘든 짐이 그를 괴롭힐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과 그분의 계획과 행하심과 성취는 여전히 그에게 남아있습니다. 아담은 실업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에게 내려진 두 번째 형벌의 말씀은 그에게 직접적으로 내려지지 않고 땅에게 내려집니다.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하지만 땅이 엉겅퀴와 가시만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계속해서 땅의 소작물을 취하며 살 수 있고, 그의 노동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H. 브로이머). 세 번째 형벌의 말씀은 남자가 다른 이들을 돌보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땀’으로 이루어지긴 하지만, 그에게는 ‘밭’을 관리하고 창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대비를 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비교. 신 24:19-21).
하나님이 내리신 형벌의 네 번째 부분은 사람에게 가장 민감하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그가 취해진 흙으로의 회귀입니다. 죽음과 사망은 이제 남자와 여자의 삶에 현실로 남게 됩니다(비교. 창 2:17). 비록 육체적인 죽음이 바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고, 사람은 계속해서 살 수 있었지만, 그의 삶은 “죽음이라는 씨앗이 성숙해 가는 과정”입니다(F. 델리취). 그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이후로 그 죽음의 씨앗을 자신 안에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 해도, 이 죽음이 최대의 저주는 아닙니다. 그 최대의 저주는 “다른 죽음”, “두 번째 죽음”,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입니다.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이는 죽더라도 살 것입니다(비교. 욥 19:25-27a; 요 11:25-26; 요일 5:12).
적용과 기도 하나님, 인생이 노동과 땀 흘림으로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그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이 땅에서부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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