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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함시

10월 20일(주일)세계와 인류의 초기 역사에서 5-형제가 다툴 때(창세기 4:1~24)

위선자들에게는 화가 미친다

창세기4:8~9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마태복음 23:29~35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가인은 살인자가 되고, 무고하게 살해된 아벨은 최초의 순교자가 됩니다. 그래서 아벨은 억압받고, 거절당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박해를 받는 예수 공동체의 한 유형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가인은 교만한 자기 의와 악의 선례로 여겨집니다(요일 3:11-12). 가인은 자신의 잔혹한 행위를 은폐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벨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극악한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죄에 빠진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가인은 자기가 저지른 악을 숨기고, 밀어내고, 감추려고 합니다(비교. 요 7:11; 행 5:1-4; 시 32:1-5).

   가인의 형제 살해는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원죄가 단순히 반복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직접적인 죄가 존재했지만, 여기에서는 그 죄의 결과인 죽음의 영향이 나타났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원죄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도 계속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사회적인 죄로 이어졌습니다. M. 루터는 창세기 해설에서 가인의 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인은 처음에 자기의 장자라는 신분을 과신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좋아하실 것으로 생각하면서 죄를 지었다.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던 가인은 아벨이 하나님께 더 인정받고 있다는 징조를 본 후에 시기와 증오가 생겼다. 그리고 그 시기와 증오는 형제를 제거하려는 속임수와 거짓으로 이어져, 형제를 안심하게 한 후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우리는 오래전에 ‘우리 안의 가인’을 발견했을 것입니다(비교. 마 5:21-22; 요일 3:15). 하지만 도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엡 4:25-26; 비교. 요일 1:8-2:2; 약 1:19-21).

 

적용과 기도  정의의 하나님,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고, 혹은 화가 나더라도 오늘 해질 때까지 화를 품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