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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함시

10월 11일(금) 믿고, 사랑하고, 극복하세요 - 요한일서에서 발견한 것(5:1~21)

죄의 긴장 속에서 드리는 중보기도

요한일서 5:16~17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확신에 찬 기도에는 죄를 향해 ‘예’라고 말하는 것과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올바로 아는 사람은 동료 그리스도인을 용서하며 살도록 동기부여를 받습니다. 우리에게는 정죄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과 같이 죄인을 위해 중보할 권리를 주셨습니다. “죄인을 위한 중보기도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 있다. 하지만, 생명은 강제로 주어지지도 않고, 저절로 주어지지도 않는다. 용서는 고백과 회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에는 형제와의 진지하고 훈계하는 대화도 포함된다”(비교. 마 18:15-17)(H. 크리머).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용서받지 못하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를 만나게 될까요? 요한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지만, 지금은 예수님을 자기 삶의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가르침을 정당한 진리로 선포하는 거짓 교사들과 관련시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더 잘 알면서도 의식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영원한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비교. 막 3:28-29; 히 6:4-6).

   한 경험 많은 상담가는 “사망에 이르는 죄나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범했다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조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해서 두려움을 갖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아주 멀어지지는 않았다는 분명한 신호입니다. 반면 신성 모독자는 자신의 죄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죄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든 죄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읽기. 롬 6:23). 우리에게 용서와 새로운 시작이 주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멈추지 맙시다.

 

적용과 기도  죄를 미워하지만,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