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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함시생각

구원의 확신의 다른 이름은? -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글 | 김충연 교수(감리교 신학대학교 신약학)


  내가 몸담고 있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는 교수와 학생이 소그룹을 이루어 한 주간의 삶을 나누고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한 학생과 ‘구원의 확신’에 관하여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솔직하게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자신이 아무리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해도,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정작 나의 확신과 생각이 다를 수 있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1학년 학생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대견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다르게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단지 죽어서 천국 간다는 확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의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 땅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제가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합니다만, 구원이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4장과 5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살든지 죽든지, 깨든지 자든지 주님과 항상 함께하는 것’(살전 4:13-18; 5:10)입 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단순히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구원이 주님과 항상 함께하는 삶이라면, 구원의 확신은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이 땅에서 주님과 행복하게 사는 삶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너무 행복하고 기쁘면 그 가운데서 예수님을 더 깊이 신뢰하게 됩니다. 이런 신뢰와 깊은 관계 속에서 느끼는 행복과 평안, 기쁨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런 사랑에는 두려움이나 의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요일 4:18).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충분히 행복합니까?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까? 행복과 기쁨은 기독교의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보고 궁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에 웃음과 기쁨이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웃게 만드는지 궁금하게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16에서 예수님은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바로 “믿는 사람들의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처음 출석하게 되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를 배워서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보고 믿음을 갖게 되고, 교회에 출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믿는 여러분은 더 행복하고 더 기뻐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기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삶에 있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짐들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믿음 생활을 할 때 ‘맡기는 삶’( )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합니다. 이 과정을 다 겪으면 비로소 초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낙타’의 단계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짐만 지거나, 그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지 않는 낙타는 절대로 자신의 삶을 변형시킬 수 없습니다. 둘째는 ‘사자’의 단계입니다. 사자는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사자의 정신은 기존의 가치를 파괴할 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는 못합니다. 즉, 기존의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더욱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셋째는 ‘아이’의 단계입니다. 여기서 아이란 모든 어려움을 부모에게 맡기고, 춤을 추듯, 놀이에 흠뻑 빠지듯, 자신의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의 삶이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아이 처럼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창조적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정녕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마 18:3; 19:14)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런 의미입니다. 초인( )은 누구입니까? 네, 바로 어린아이입니다. 초인은 어린아이처럼 맡기는 사람( )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신뢰하고 내 삶을 맡기면 두려움은 사라지게 되고,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 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