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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함시

6월14일(금)산상수훈으로의 초대 8(마태복음 7:7~23)

가치 없는 말

마태복음 7:21~23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은 산상 설교를 팔복으로 시작하셨습니다(마 5:1-12). 그런데 “실천에 대한 진지한 요청”(G. 마이어)으로 끝마치십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의 왕국의 기초를 이해하고, 믿음의 어휘를 익히는 데만 관심을 두시지 않습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듣기’와 ‘행함’이라는 두 다리를 사용하여 목적지로 향해서 걸어갑니다”(G. 마이어). 사도들의 편지는 계속해서 이 요구를 강조합니다. 야고보는 묻습니다.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약 2:14; 비교. 고전 9:27; 딛 1:16; 요일 3:18; 약 1:22).    무엇보다 먼저 확실히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여, 주여!”라고 부른다면 그 사람은 올바른 기도의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로 부르기로 결정하는 것에는 기꺼이 그분을 주인이 되시도록 하려는 의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위선이며, 예수님은 여러 번 설교에서 위선을 질책하셨습니다(마 6:2.5.16; 7:5). “위선적인 행위”는 그분이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비 교. 마 23:27-33). 철저히 진실할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마 12:50)이기 때문 입니다.

   결정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하함시’ 2023. 10. 25-27 참조) 우리는 이것을 그분의 아들의 삶에서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요 4:34).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죽음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도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우선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막 14:36b).

 

적용과 기도 주님, 겉으로만 주님을 섬기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주님의 거룩한 뜻 가운데 살아 가는 누가 봐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