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의 방해 - 격변 속의 격려자
사도행전 15:1~3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의 시간에 평화를 깨는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유대에서 온 유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형제자매와의 만남은 일반적으로 기쁨의 이유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바리새인 출신의 기독교인들일 것으로 추정되는 방문객들(비교. 행 15:5)은 엄격한 율법을
요구함으로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과 특별한 경험을 한 후에 갑자기 “맑은 하늘의 날벼락”처럼,
시험이나 갈등이 다가오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벧전 5:8).
옛말에 “모든 승리 후에는 헬멧을 더 단단히 묶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읽기. 엡 6:12-17; 살전 5:8).
“여러분이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1절).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구원의 메시지에 대한 이런 공격은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그에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충분하지 않습니까?
다른 것이 더 필요합니까? 바나바와 바울에게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말을 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믿음의 형제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할례받지 않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막으려 했습니다.
신학자 A. 크리스틀리브(1866-1934)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보다
자신을 더 높게 여기는 오만함이며, 다른 모든 신앙을 틀린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사랑 없음.”
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유대 기독교인들처럼 “예수 외에 다른 무엇을 덧붙이는” 이런 숨겨진 태도가
우리안에 있지 않습니까? 이런저런 성과를 이루어야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이 질문에 분명하고 담대하게 답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행 15:11).
적용과 기도
오직 나의 경험, 나의 지식만이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오만함에서 벗어나
오직 예수님이 기준이 되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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