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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함시

4월22일(토) 사기꾼 그리고 축복의 통로 - 야곱 2 (2)

속이는 자가 속아 넘어가다

▒오늘의 말씀

창세기 29:21-30

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        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야곱과 라헬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라반의 속임수로 무참하게 일그러집니
다. “눈을 떠보니 레아가 아닌가!” 이 말에서 우리는 엄청난 충격의 파장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칠 년 동안 라헬만을 기다렸는데 다른 여자가 있는 겁니다. 불쌍한
레아! 불쌍한 라헬!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신부의 방은 어둠에 둘러싸여 있고, 신부는 베
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끔찍한 고통과 분노 속에서 야곱은 라반에
게 따집니다.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속이다니!’ 이 표현을 쓴 것은 우연일까요?
이 말은 야곱이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또한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에게
그런 행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도망자로 살고 있습니다(창 27:1-36). 라반
의 대답도 그런 야곱의 속임수를 슬쩍 암시하고 있습니다. “(너희 고장과는 달리) 큰딸을
두고서 작은딸부터 시집보내는 것은 이 고장의 법이 아닐세.” 여기서 야곱은 자기
자신의 죄, 자신의 속임수와 직면하게 됩니다. 지금 그에게 일어난 일은 과거 자신
이 했던 일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는 그 거울을 보면서 자기 자
신과 자기 행동을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형에게 했던 짓을 자신도
똑같이 당한 것입니다. ‘속는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이 고통스러운 경험의 이면에는 사기꾼 라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사건은 하나님의 단단한 도구, 야곱을 갈아 새롭게 만드시는 “숫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처벌도 아니고, 그저 복수도 아니며 훈련입니다. 이 과정
을 통해 야곱은 자기 자신을 알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자기의 참모
습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비교. 욥 4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