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하함시

4월18일(목) 사기꾼, 그리고 축복의 통로-야곱3

라헬과 이상의 죽음

 

 

창세기 35:16~20, 27~29     시편 90:12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28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시편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야곱이 깊이 사랑했던 라헬이 죽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녀가 레아와 시녀들보다 늦게 어머니가 되었고, 두 아들만을 낳았는데, 둘째 아들을 낳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야곱이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과 겨루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라헬은 자기가 살아온 인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베노니”(‘나의 고통과 불운의 아들’)라는 이름을 아들에게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라헬을 잃은 것은 분명히 그에게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영원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아이를 “베냐민”, 즉 “행운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이를 통해 라헬이 그의 삶에 어떤 행운을 가져다주었는지를 표현하려는 것이라면, 이것은 라헬에 대한 그의 사랑이 ‘우상 숭배’의 성격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 다.

   하나님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의 삶에도 깊은 슬픔을 허용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절망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D. 본회퍼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슬픔에 대해 “감사가 추억의 고통을 조용한 기쁨으로 바꾼다”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이미 이십 년 전에 그의 죽음이 곧 다가올 것으로 예상했었지만, 야곱이 돌아왔을 때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하지만 리브가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예전에 그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을 걱정했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동안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부모를 잃는 것은 우리 삶에서 큰 변곡점입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는 나를 버려도 주님은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시 27:10).”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삭이 죽었을 때, 에서와 야곱은 함께 그를 묻었습니다. 그들이 미리 화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요!

 

적용과 기도  우리는 언젠가 한 번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