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산책이 아니다
사도행전 13:6~12 // 누가복음 10:19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소규모 선교팀은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힘든 육체노동: 이들은 구브로 동부 살라미에서 남서해안 바보까지 약 160km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그 길을 가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그 여정 중에 세운 기독교 공
동체에 대해 아무것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 없이 견디기: 하나님께서 친히 사명을 주시고 복음이 분명하게 선포되었을지라도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선교사들은 이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마술사와 거짓 선지자의 대대적인 저항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저항은 선교사들을 총독의 법정으로 인
도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습니다.
●적대적인 반대와 열린 마음: 총명한 로마인이었던 서기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
다. 그러나 당시의 이교적 “종교 혼합”에 사로잡혀 그는 궁정 점성가도 받아들였습니다. 이 마술사 엘
루마는 자신을 “바예수”(히브리어로 “예수의 아들”)라고 불렀으며, 자신의 비밀스러운 행위를 위해 하나님
의 이름을 오용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바울은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이
라며 그의 정체를 폭로했습니다. 총독은 하나님의 아들이 강력하게 행하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분은 “악마의 자식”을 끝없는 어둠에 빠뜨리시고 그 유대인 대적의 시력을 빼앗으셨습니다. 그러나
로마 총독의 눈과 마음은 열어주셨습니다.
“예, 예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싸웁니다. 당신이 우리를 모든
어둠 속에서 인도하실 때, 우리는 예수님을 따릅니다. 마지막 원수가 잠잠해질 때까지 모든 것이 당신
앞에 굴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십니다!”(J.C 블룸하르트. 1852)
적용과 기도 선교가 비록 쉬운 일이 아닐지라도 선교사들의 사역 위에 주님께서 늘 함께하셔서 더 많은
곳에 담대히 복음을 전파되게 하시고 풍성한 열매가 맺히게 하옵소서.
'오늘의 하함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월21일 (금) 위로의 아들, 바나바 3 (0) | 2025.02.21 |
---|---|
2월20일 (목) 위로의 아들, 바나바 3 (0) | 2025.02.20 |
2월18일 (화) 위로의 아들, 바나바 3 (0) | 2025.02.18 |
2월17일 (월) 위로의 아들, 바나바 3 (0) | 2025.02.17 |
2월16일 (주일) 위로의 아들, 바나바 3 (0) | 2025.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