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요한일서 1:1~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 요한은 여행 중에 알게 된 소아시아의 교회(그의 편지는 이방인들의 기독교공동체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 특별히 유대적인 주제가 아닌, 구약성서에 대한 언급만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요일 3:12)에도 아마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그의 매우 인간적인 표현인 ‘자녀’라는 호칭이 이것을 암시합니다(요일 2:1; 3:18; 5:21). 1세기 말엽에 이르러 거짓 가르침과 하나님과 믿음의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이 퇴색됨으로 인해 요한은 이 목회서신을 썼을 것입니다. 그는 무엇이 하나님과의 결합에 문제를 일으키고, 서로를 위태롭게 하고 심지어 파괴 하는지를 보여주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다시 생겨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소속감, 감당해야 하는 것, 그리고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갈망은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갈망을 누구와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는 다양한 제안들, 다른 종교들 또는 초자연적 관행들과 같은 위험한 샛길이 많습니다. 요한은 그의 독자들을 처음 시작하던 때, 즉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셨 던(요 1:1-3) 때로 데려갑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담고 있는 이 ‘말씀’은 그래서 ‘아들’이라고도 불립니 다(W. 데 보르).” 요한복음 14:9-11을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비인격적인 지혜의 말씀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소위 영지주의의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 1:14).”
만일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서도 헤맬 것이며(읽기. 히 1:1-3), 실현 가능한 관계에 대한 우리의 갈망도 환상으로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고전 1:9).”
적용과 기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만지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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