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판단 기준을 세웁니다
마태복음 7:1~2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6:14~15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너희도 심판을 받고,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되어서 주실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보복 규정을 들어 말씀하신 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출 21:24a).”라는 구절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은 “너, 사람아, 기준을 설정하라! 하늘의 심판자께서 심판하실 기준을 세워라. 만약 네가 네 이웃을 매섭고 무자비하게 심판했다면, 하나님께서도 너에게 그와 같이하실 것이다. 왜 이 부분에서 구약의 말씀이 사용됐을까?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판단은 은혜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혜가 없는 곳에서 가장 정확하고, 정의로운 보복의 규칙이 적용될 수 있다(G. 마이어).”라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서로를 은혜 안에서 받아주고,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예수님을 올바르게 이해한 것입니다. 타인을 은혜 안에서 받아준다는 것은 우리가 타인을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분류해 넣어놓은 “서랍”에서 그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판단으로 인해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시작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은혜로 대한다는 것이 모든 좋지 않은 것들과 불성실과 허물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을 뜻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권한 밖인 경솔한 판단으로 정죄하는 것(비교. 고후 7:2-3; 약 4:12)과 바람직하게 판단하는 것(비교. 고전 2:14-5; 10:15)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 상황과 인간적인 행위들을 구분하고 평가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건강한 기독교 공동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서로를 향한 건강한 판단이 없는 곳에는 서로에 대한 무관심만이 남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자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간의 판단을 기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을 향한 우리의 판단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를 자신에게 항상 되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유전과 환경의 어떤 영향이 타인을 정죄하게 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이제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봅시다(읽기. 요일 2:10; 4:19-21).
적용과 기도 다른 사람을 경솔하게 판단하고 정죄하기보다 예수님처럼 사랑과 자비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이 세상에 서로를 향한 따뜻한 사랑의 관심이 넘쳐나게 하옵소서
'오늘의 하함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월1일(목) 산상수훈으로의 초대(마6:22~7:6)-11 (0) | 2024.02.01 |
---|---|
1월31일(수) 산상수훈으로의 초대(마6:22~7:6)-10 (1) | 2024.01.31 |
1월29일(월) 산상수훈으로의 초대(마6:22~7:6)-8 (0) | 2024.01.29 |
1월28일(주일) 산상수훈으로의 초대(마6:22~7:6)-7 (0) | 2024.01.28 |
1월27일(토) 산상수훈으로의 초대(마6:22~7:6)-6 (0) | 2024.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