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하함시

3월10일(주일) 하나님에 의해 인도받고, 사용되고, 은사를 받은 예언자- 엘리야 4

캄캄한 물음에도 희망이

 

열왕기상 21:13~16   

13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히브리서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이스르엘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나봇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포도원을 둘러싼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려 하거나 거짓 증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불의가 승리할 때, 수동적으로 행동하며 공범이 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우리는 모두 여기서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불의한 일 앞에서 우리가 그때 불의에 저항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며 고개만 끄덕였을까? 아니면 가타부타 없이 침묵하며 의로운 척만 했었을까? 우리는 정의에 동의하는 표시로 고개만 끄덕이거나 침묵하는 기독교인으로서 약자를 짓누르는 강자의 불의한 승리에 일조하지 않았는가(W. 펜드삭)?”

   나봇은 성경에서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유일한 인물은 아닙니다. 나봇 말고도 세례 요한(막 6:27- 28)과 스데반(행 7:57-60)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이런 불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살아계신 하나님은 악이 자유롭게 활개 치며 다니는 이 세상 한 가운데에서 어떤 표시를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죄 없는 아들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불의로 몰락해가는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히 2:14b; 비교. 골 2:14). 하지만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을 붙잡아둘 수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승리하셔서 하늘에 오르시 고, 최후의 심판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그리고 다시 이 땅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그 행실로 갚아줄 것입니다(마 16:27).

   하지만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주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은 지금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게 될 마지막 때를 희망 가운데서 기다리게 합니다. “이와 같이, 지금 너희가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요 16:22-23a; 읽기. 계 21:4-5; 22:12- 13).”

 

적용과 기도 마라나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갈망합니다. 이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불의하고 이해 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낙심하지 않고 옳은 길을 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