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6일(수) 하나님에 의해 인도받고, 사용되고, 은사를 받은 예언자- 엘리야 4
작지만 큰 사람
열왕기상 21:1~4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요한일서 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나봇은 과연 “작은 사람”이었을까요? 그의 포도원은 땅값이 높은 지역에 있었고, 스스로를 “매우 큰 사람”이라 느끼는 한 왕의 겨울 저택에 잇닿아 있었습니다. 아합 왕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화려 한 궁전에 거주하지 않을 때는 이스르엘 평원의 온화한 기후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채소를 기를 수 있는 정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왕을 위해 이웃이 그런 땅을 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 하는것은 당연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아합은 나봇에게 포도원을 포기해도 아쉽지 않을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토지를 매매하는 일을 율법이 금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포도원 주인인 나봇이 끝까지 버티면서 자신의 제안을 물리칠 수도 있다는 것은 계산에 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고 지극히 평범한 한 시민이었던 나봇은 왕과 대립각을 세워서 대체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나봇이 아합의 제안을 물리쳤던 이유는 자신의 신앙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에 있었습니다: “제가 조상의 유산을 임금님께 드리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불경한 일입니다(왕상 21:3).” 아합의 솔깃한 제안도, 제안을 거절한 뒤에 있을 왕의 분노에 대한 두려움도 나봇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작은 사람”은 자신이 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 셈입니다. 그는 왕보다 큰 권세를 가지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으로부터 나봇은 “아합 왕”의 소원을 물리칠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갈등을 겪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그 분의 계명을 한결같이 지킬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즉각적으로 간단하게 대답하긴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저 기도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내가 성실한 길을 선택하고 내가 주님의 규례들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습니다. … 주님께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시면,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인도하는 길로 달려가겠습니다. …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시 119:30.32.36; 읽기. 눅 9:25).”
적용과 기도 세상의 그 어떤 권력보다 크신 하나님, 우리의 육신에만 피해를 줄 수 있는 세상 권력을 두려워하기보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좌우하시는 당신만을 두려워하며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