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하함시

3월24일(주일) 예수님과 함께하는 고난의 여정(요 11~12장)

믿사마피 2024. 3. 24. 00:01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 11:17~27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너무 늦게 도착하셨다고 간결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느끼기에도 그랬고, 실제 시간상으로 볼 때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소식을 받자마자 출발하실 수 있었는데도(3, 6절), 이틀이나 늦게 도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관련된 일에는 늦었다는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누군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10시에 중요한 시험이나 수술이나 면접이 있는데, 12시가 되어서야 그것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났어도 저는 그 상황을 위해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간에 제약받지 않으시고, 뒤늦은 기도도 들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비교. 시 90:4; 벧후 3:8).

   예수님은 베다니로 가십니다. 마르다가 즉시 그분을 맞으러 달려 나갑니다. 예수님은 늦게 도착하셨다는 비난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지나가십니다. 그녀가 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질 줄 믿는다고 고백한 그녀의 말이 예수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곧 바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놀라운 기적을 알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그것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격하는 대신에, 다시 한번 영원에 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지금 여기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대신에 자주 하나님의 힘을 영원에만 연관시키곤 합니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이 영원에서뿐만 아니라 지금도 생명 그 자체라고 말씀하시면서, 더 나은 것으로 마르다를 다정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이들은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요 5:24; 6:47; 8:51).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앞으로 며칠 동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실 일입니다.

 

적용과 기도  하나님의 능력에는 시간적인 제약이 없음을 믿습니다. 우리도 이 믿음으로 때를 상관하지 않고 늘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