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하함시

3월11일(월) 하나님에 의해 인도받고, 사용되고, 은사를 받은 예언자- 엘리야 4

믿사마피 2024. 3. 11. 00:01

분명한 예언

 

열왕기상 21:17~21

13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갈라디아서 6:7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주님께서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아합이 자신의 권력을 등에 업고 기세가 등등하여 나봇의 포도원을 소유하고 싶어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달해 줄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나봇의 포도원을 둘러싼 모든 과정을 세세하고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합은 도가 지나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봇을 죽이라는 이세벨의 죄악에 대해서도 ‘네가 죽였고, 네가 훔친 것’이라며 아합에게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자신들을 고소하는 사람이 없으면 불의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었는지 모릅니다. 또한 악을 심판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많은 시간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이미 일어난 불의한 일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불의한 일을 당해야만 했던 사람을 잊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성도들의 죽음조차도 소중히 여기십니다(시 116:15).

   아합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느꼈던 것일까요? 그가 엘리야를 맞이하면서 했던 말은 아합이 어느 정도 이를 예감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내 원수야, 네가 또 나를 찾아왔느냐?” 그리고 그의 이 말은 중대한 사실 하나를 알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과 그가 보내시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을 적으로 만들고(비교. 사 63:10)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과도 적대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은 나봇의 죽음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열왕기상 22:34-38에서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합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만” 하기위해 자기 자신을 팔아버렸습니다(왕상 21:20.25). 이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막 8:36)?” 하나님께서 이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우리는 에스겔 18:23.27-28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적용과 기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언제나 겸손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에 생명을 주는 당신의 말씀을 길잡이 삼아 불의한 길에서 언제나 돌이킬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