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4일(토) 사랑의 표시(요한일서 3:1~24) - 5
예수님께서는 파괴하는 자의 힘을 파괴하신다
요한일서 3:6~10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께로부터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 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히브리서 3:14~15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아들은 악마의 활동을 파괴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문장을 우리의 실생활에서 적용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E. 슈나벨이 말한 대로 “은혜의 권세는 죄의 권세를 떼어버린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소망만 자라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는 내가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는 힘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엡 1:4).”
선과 악 사이의 긴장은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려는 바람과 능력과 죄 아래에 있던 옛날을 생각하며 옛사람 안에서 여전히 행동하는 것 사이에서 계속됩니다. 이것은 선을 갈망하는 목표에 미치지 못 하는 고통과도 같습니다.
스위스의 신학자 T. 해리는 이렇게 우리를 독려합니다: “영과 육을 가진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면 이제 그의 현실은 그의 잘못과 불완전함과 부족함으로 결정될 수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주님의 은혜로 의롭고, 거룩하고, 구원받은 자로서 인정받는다. 이 사실은 그의 영혼의 어두운 면에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영혼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그 한 가운데에서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불완전함을 당신의 의로 덮으신다. 그분의 받아주심과 용서와 자비를 통해서. … 나는 ‘그리스도는 나의 의로움이시다(고전 1:30)!’라는 이 말을 기도 중에 얼마나 자주 무심코 되뇌는지 모른다. 내가 내 영혼에 무엇이 있는지 하나님께 봐주실 것을 부탁드릴 때, 그분은 내 안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한계와 잘못과 불가능함을 다루어 주신다. 그래서 그분은 내가 꼭 붙드는 생명줄이 되어 주셨다.”
적용과 기도 악마를 멸하시는 예수님,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여전히 찾는 악마의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당신 품 안에서만 우리의 영혼은 안전함을 믿고 살게 하옵소서